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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체 — 건축무한육면각체
이상은 시 속에 건물을 지었다.
건축, 무한, 육면, 각체—
잘라낸 네 글자가 공간의 문법이 된다.
각체는 판재를 자르지 않는다.
가공하지 않고, 감추지 않는다.
연결부속은 노출되고, 그 접합 사이로 틈이 생긴다.
그 틈이 결함이 아니다.
간극이 설계다.
빛이 들어오고, 그림자가 생기고,
구조가 솔직하게 드러나는 자리—
완성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오히려 공간을 숨 쉬게 한다.
유닛 하나는 작다.
그것이 모듈이 되고,
모듈이 모여 그룹이 되고,
그룹이 쌓여 하나의 세계가 된다.
위계는 있지만 위계에 종속되지 않는다.
어디서 시작해도 전체로 이어지고,
어디서 끊어도 그 자체로 완결된다.
무한, 이것은 가능성이다.
전시는 일시적이다.
그러나 각체의 판재는 다음 공간으로 간다.
해체된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다른 질서로 다시 세워진다.
육면의 공간 안에서
각체는 계속 다른 세계를 짓는다.
이름의 기원 — 건축무한육면각체
브랜드 이름 '각체'는 시인 이상(李箱)의 시어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 왔다. 이상은 1930년대 경성에서 수학적 언어와 건축적 상상력을 시로 결합한 전위적 작가였다. 그의 시 속 공간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비틀고, 무한을 수식으로 쓰며, 육면체라는 가장 기본적인 입체를 해체와 재조합의 단위로 삼았다. 건축·무한·육면·각체, 네 개의 단어가 각각 이 브랜드의 지향을 품는다. 건축은 물질로 공간을 만드는 행위이고, 무한은 그 가능성의 범위이며, 육면은 전시 공간의 기본 형태이고, 각체는 그것을 이루는 구조적 단위다.
간극 — 숨기지 않는 설계
각체의 판재는 특별히 가공하지 않는다. 연결 부속은 안으로 숨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다. 그 결과 판재와 판재가 만나는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틈, 즉 간극이 생긴다. 각체는 이 간극을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설계의 언어로 삼는다. 빛이 틈 사이를 지나고, 그림자가 구조의 리듬을 그리며, 보는 사람은 이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솔직한 구조는 신뢰를 만든다. 완성된 척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완성에 가깝다.
위계의 질서 — 유닛에서 월드로
각체의 조립은 네 단계의 위계를 따른다. 가장 작은 단위인 유닛(Unit)이 모여 하나의 기능 덩어리인 모듈(Module)이 되고, 모듈이 조합되어 전시 공간 안의 그룹(Group)을 이루며, 그룹들이 하나의 전시 세계(World)를 완성한다. 이 위계는 설계의 일관성을 보장하면서도 어느 단계에서도 독립적으로 의미를 갖는다. 모듈 하나만으로도 전시는 가능하고, 그룹 하나가 곧 하나의 제안이 된다. 복잡도는 올라가지만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
순환 — 해체가 끝이 아니다
각체가 겨냥하는 시장은 전시와 팝업이다. 이 공간들은 본래 일시적이다. 세워지고, 쓰이고, 다시 사라진다. 그러나 각체의 판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해체된 구조는 다음 전시의 재료가 되고, 다른 모듈로 재조합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낭비 없이, 흔적 없이, 그러나 기억은 남기며. 각체는 공간을 짓는 도구이기 전에, 공간을 순환시키는 시스템이다.